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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2 고등학생 때의 공부이야기 (2)

나는 효율적인 학습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학습하는 분야를 자주 바꾸고, 학습하는 방법도 자주 바꾼다. 학습의 효율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당시에 공부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한 덕분에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3 때는 8시간을 자면서 성적을 상승시켰다. 전교석차 150등 정도였던 성적이 1년도 안 되어 2등까지 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전교 석차 200등이었다. 반에서는 10등~15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2학년이 되어도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 평균보다 잘하는데 뭐 욕심을 더 부리느냐는 생각이다. 잘 해 봐야 무엇하겠느냐는 목표 상실과 잘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느냐는 자신감 결여의 상태였다. 수능을 치러야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걸 2학년 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고등학교 위에 대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을지도.

이해찬 1세대라 불린 그 세대였고, 우리 학교는 공립이라 교육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모의고사를 보지 않았고, 나는 2학년 때까지 모의고사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컴퓨터 서클활동을 했고, 3DS MAX로 동영상을 만들어 축제 때 여고생들을 꼬시곤 했다. 방학이면 써클활동 핑계대고 학교에 가서 스타크레프트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어머니는 2학년 때부터 대학 입시에 대해 정보를 모으러 다니셨다.

그렇게 무난하게 150등 정도에 머물렀던 2학년 1학기를 마쳤고 고등학교 생활의 절반이 끝났다. 무난하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던 2학년 2학기를, 완전히 다른 마인드와 전략으로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여름방학 때의 몇 가지 사건들이 속된말로 시너지를 발휘하여, 2학년 2학기 부터 난 공부를 공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사건들이 무엇인가 하면.

대입에 대한 나의 무관심에, 위기감을 느끼신 어머니가 여름방학 때 반강제로 학원에서 배우게 한 과목이 물리와 언어였다. 2학년 1학기 때까지 물리 성적인 너무 저조했는데, 100점 만점에 내 성적은 70점 대에서 올라가지를 않았다. 시험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계속 받았다.

그래서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억지로 듣기 시작했던 그 물리 수업은 해당 학원의 정규과정도 아니었고, 신인 강사가 학생들 몇 명 묶어서 싼 가격에 진행했던 수업이었다. 마침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전자기 파트를 들을 수 있었다. 학교와 똑같은 것을 가르치는 데 설명 방식과 설명 순서가 달랐다. 그것이 계기였다.

가령 학교 선생님은 책에 나온 순서대로 균일하게 가르친 반면, 학원 강사는 필수공식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나머지 부분은 하는 둥 마는 둥 지나갔다. 챕터들을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가지 않는 그 강사의 교육 방식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수업을 듣고 물리 교과서나 자습서를 보니 나머지 부분은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가르쳐줄 시간이 한 달 밖에 없었던 조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강사는 진도를 나가는 형태가 아니라 독학을 보조하는 형태의 수업을 했다. 포기했던 물리가 만점 가까운 점수로 오르고, 게다가 엄청나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장 어려웠던 게 가장 쉽고 재미 있어지는 경험을 해보면, '내가 어려워했던 다른 것들도 이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과목도 물리처럼 잘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과목에 대해서도, 내가 머리가 딸리거나 그 과목이 진짜 어려워서가 아니라, 학습하는 방법이 잘못되어서가 아닐까 의심해보게 되었다. 그 때부터 무언가를 무작정 공부하기 전에 먼저 공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의 중심에는 '좋아하는 과목을 먼저하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공부한다'라는 전제가 있었다. 공부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전제는 지금 내 인생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부하는 데 장애가 되었던 목표 상실과 자신감 결여 중에서 하나가 우연찮게 해결되었다. 자신감을 찾게 된 스타트 지점은 물리였지만 2학년 2학기 동안 내신 전 과목으로 파급되었고, 3학년 부터는 수능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언어, 영어, 수리, 사과탐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부했다. 독학을 중심으로 했고, 수리는 학원 1개, 과학은 1주일에 한 시간짜리 과외를 보조적으로 활용했다. 각 과목을 공부했던 방법이나 학원과 과외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세세한 내용도 재미있으니 나중에 적어야겠다.

그렇다면 목표에 대한 의지, 즉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은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 방학동안 물리와 함께 듣게 된 언어 수업에서 강사는(지금도 유명할 거다. 이X수 선생) 틈만 나면 이런 말을 했다. '좋은 대학일 수록 여대생이 예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례와 증거자료를 여러 측면으로 제시했다. 당시의 나에게는 이것만 가지고도 왜 명문대학에 가야 하는지 확실한 명분이 되고도 남았다. 최고의 동기부여였던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미끼에 낚여 나는 공부에 대한 사명감에 불탔고, 그렇게 2학년 2학기를 맞았다.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 MUST과 CAN이 만나면 불가능은 없다. 일단 발동이 걸린 후에는 '예쁜 여대생'에 대한 기대 보다는 성적이 오르는 재미 때문에 열심히 했다. (진짜다). 2학년 2학기 동안 내신 전교 등수를 100등 정도 올렸고 3학년 1학기가 되어 전교 2등을 해봤다. 전교 2등이라니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가채점 결과를 부모님께 비밀로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성적과 석차가 나온 후에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내 등수를 직접 들었다.
그것도 다른 학부모들도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 때 어머니의 기분이 어떠셨을까. 어머니는 그 주 토요일에 나도 먹어본 적이 없는 피X헛 피자를 반 전체에 돌렸다. 피자맛을 본 몇 몇은 나를 다음 학기 반장감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난관이 남아 있었다. 내신에 재미를 붙여 내신 등수를 올리는 데 집중했고, 2학년 말에 본 수능 모의고사 점수는 전교 200등. 이해찬 1세대에게는 안타깝게도 내신 석차보다는 수우미양가에서의 수의 갯수와 수능점수가 중요했으며 1학년과 2학년 1학기의 내 성적표엔 우미양이 많았다. 내신 성적을 향상시킨 경험은 입시에서의 유리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의 체질과 태도를 바꾸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신에서 방법을 찾은 것처럼 수능도 마찬가지로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감이 없었기 때문에 과목별로 학원을 한두 달씩만 다녔고 바로 그만두었다. 한 달 다녀보니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 것 같았고, 학원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으며 빠듯한 생활비 쪼개서 다니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당시에 손사탐으로 유명했던 손주은 대표의 메가스터디 사업 초기였고, GVA 강의에서 막 동영상 강의로 전환되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유명한 강사들의 동영상 수업을 집에 앉아서 1/3 가격(지금은 비싸졌지만)에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니. 난 당시 온라인 강의 예찬론자였지만 내 주위에 친구들에게 아무리 추천을 해도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동참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손주은 대표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강연일기, 창업일기도 드라마틱하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도 나중에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만, 내가 전환점을 맞은 시기와 그가 전환점을 맞은 시기가 비슷하고, 그가 사용한 '공부의 오르가즘'이란 어휘를 이해할 정도로 손주은 대표의 학습 철학에 많이 공감했다.


어쨌든 한 학기 분량의 강의들을 주말에 집중해서 끝내버렸고, 그렇게 압축해서 아낀 시간과 돈이 상당하다. 번 시간을 이용해 잠을 충분히 자면서도 성적을 올렸다. 반 15등 전교 200등이었던 모의고사 석차는 최종 수능에서 반 1등,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2002년도는 수능 평균이 예년보다 90점 정도인가 하락했던 때여서 시끄러웠다. 난 시험이 어렵게 나올수록 유리한 체질이었고, 그 덕을 봤다.

이야기를 적으면서 당시를 떠올리다보니 그 때의 긴장감과 설레임이 다시 느껴지는 듯 하다. 고교 때의 이런 전환과 성취의 경험은 지금의 나에게도 일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 이렇게 고등학교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바로 학습과 효율성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을 정리해보기 위해서이다. 다음 글에 계속. 그나저나 카테고리가 정말 마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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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st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며,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이루시겠네요 ^^ 그럼 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끝없이 미래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물러갑니다 :)

    2008/02/11 02:39
    • FlyingMate  댓글주소  수정/삭제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체스터님이 해오신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의미가 되어주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08/02/1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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